여행은 사치, 중국 청년들 “특산품 교환할 친구 구해요”
엿새간 이어지는 추석 ‘황금연휴’에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내 유명 호텔과 리조트는 빈방을 찾아보기가 어렵고,여행은사치중국청년들특산품교환할친구구해요회사 지분 투자 란 동남아와 일본 행 항공권도 매진이 이어지고 있다. 옆 나라 중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미·일 등의 단체관광 제한이 풀리고, 국경절 연휴(9월 29일~10월 6일)가 다가오면서 많은 이들이 국내외로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인 사람들도 있다. 돈이나 시간, 내지는 체력이 부족해 여행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 최근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놀이가 있으니, 바로 ‘특산품 교환’ 이다.

‘특산품 교환’. 사진 신민안공작실(新民眼工作室) 캡처
‘특산품 교환(互換特產)’ 이란 말 그대로 온라인에서 만난 두 사람이 서로의 고향 특산품을 주고받는 행위다. 지난달부터 젊은 층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지더니, 이제는 포털 사이트에 신조어로 등록될 정도로 유행이 됐다. 중국판 인스타그램 샤오훙수(小书書)에선 ‘특산품 교환’ 관련 게시글의 누적 조회 수가 5000만 개를 돌파했고, 중국판 틱톡 더우인(抖音)에도 좋아요 30만 개 이상을 받은 ‘특산품 교환’ 숏폼 영상이 등장했다.
“저랑 고향 특산품 교환하실 분?”
특산품 교환을 원하는 누리꾼은 SNS에 직접 게시글을 올려 상대를 구한다. 서로 무엇을 보낼지, 얼마만큼 보낼지는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 어떤 이는 놀라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완전히 ‘블라인드 박스’인 상태로 교환하길 원하고, 어떤 이는 한쪽이 손해 보는 것을 막기 위해 가격 하한선이나 일정 기준 등을 정해 놓자고 한다. 그래도 보통은 200~300위안(약 3만 6000원~5만 4000원)어치의 특산품을 보내는 것이 시장(?) 평균이라고 전해진다.

특산품 교환 상대를 구하는 댓글들. 중국소비자보 캡처
국토가 넓은 만큼 지역별 특산품 특징도, 선호도도 제각각이다.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고 싶거나 다양한 열대 과일을 맛보고 싶은 이들은 윈난(雲南)과 하이난(海南) 같은 남쪽 지방을 선호하며, 네이멍구(內蒙古)와 신장(新疆)같이 목축으로 유명한 북쪽 지역은 육류 및 육가공품 애호가들의 환영을 받는다. 이밖에, 쓰촨(四川), 후난(湖南), 광둥(廣東) 등 음식 문화가 발달한 지역들도 ‘특산품 교환’ 상대방의 희망 거주지로 인기가 많다.

쓰촨 성 쯔양(資陽)에 사는 항 씨가 받았다는 베이징 특산품. 사진 광밍왕 캡처
[사례1] 쓰촨 성 쯔양(資陽)에 사는 대학생 항(杭) 씨. 그는 집에서 과제를 하다가 택배 기사의 전화를 받고 쏜살같이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기다리던 ‘베이징 특산품’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택배 상자를 열자 다오샹춘(稻香村) 월병, 장이위안(張一元) 재스민차, 베이징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빙둔둔(冰墩墩) 열쇠고리 등이 가득 담겨있었다. 항 씨는 상대방이 보낸 기대 이상의 선물에 큰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다.
[사례2] 광둥 성 후이저우(惠州)에서 일하는 간호사 위안(原) 씨. 그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일이 바쁘고 쉬는 날이 적어 몇 달간 근교도 나가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SNS에서 우연히 ‘특산품 교환’ 게시글을 접하게 됐고, 곧바로 작성자에게 연락해 ‘특산품 교환’을 신청했다. “바쁜 일개미에겐 여행을 대체할 수 있는 흥미롭고 저렴한 방법이었죠.” 이후 그의 병원 사물함은 한 달도 채 안 돼 중국 각지에서 온 과자 선물세트로 가득 찼다.
대형마트랑 쇼핑몰 놔두고 왜 굳이?
사실 교통과 물류가 발달한 현대에는 지역 특산품을 구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 해외 직구도 잘되어 있는 마당에, 웬만한 국내 특산품은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살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 청년들이 ‘특산품 교환’에 열광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분석될 수 있다.
① 생면부지의 친구가 주는 즐거움

온라인에 올라온 특산품 교환 인증 사진. ″내가 보낸 것(위)″, ″내가 받은 것(아래)″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 후슈왕 캡처
‘특산품 교환’의 진짜 즐거움은 특산품이 도착하고 나서 시작된다. 서로가 어떤 특산품을 왜 골랐는지, 그 안에 깃든 자신의 추억과 사연을 나누게 되면 생면부지라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미식사교(美食社交)’라는 단어가 ‘특산품 교환’과 함께 언급되는 이유다.
‘특산품 교환’을 경험한 한 누리꾼은 초등학교 때 열중했던 ‘펜팔’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평생 만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편지 한 장에 정을 쌓고 진심을 나눴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팍팍한 삶과 일에 치여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특산품 교환’으로 그때의 향수가 느껴져 행복했다고 한다.
② 블라인드 박스가 주는 친근함

SNS에 올라온 특산품 언박싱 영상들. 사진 중국소비자보 캡처
박스를 열기 전까지 내가 가진 물건이 뭔지 알 수 없는 것. 중국에선 이를 ‘블라인드 박스(盲盒)’라고 부른다. Z세대를 타깃한 장난감, 화장품, 전자제품 등의 마케팅에 자주 쓰이는데, 중국 피규어 기업 팝마트(泡泡瑪特·POP MART)는 블라인드 박스를 내세워 상장에도 성공했다.
‘특산품 교환’이 일종의 ‘블라인드 박스’라는 것은 인기에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낯선 이와의 거래가 자칫하면 거부감을 줄 수 있는데, ‘특산품 블라인드 박스’라는 이름이 이를 상쇄할 친근감을 줬다. 또한, 안에 뭐가 든지 모르는 상태로 택배 상자를 개봉하고, 그 반응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것이 함께 유행하면서 ‘특산품 교환’의 인기가 한층 더 높아졌다.
블라인드 박스는 중국에서 어엿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 22억 6000만 위안(약 4126억 5300만원)으로 추산된 중국 블라인드 박스 시장 규모는 2021년 139억 1000만 위안(약 2조 5400억 원)까지 성장했으며, 2024년에는 300억 2000만 위안(약 54조 7800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기, 식품 안전, 범죄악용 우려 등…. 부작용도 많아
물론 파생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한쪽만 택배를 받고 연락을 끊어버리거나, 합의한 것과 다른 무성의한 특산품으로 실망감을 주는 경우다. 실제로 현지 SNS에는 “송장 번호를 알려주자마자 차단당했다”, “택배 상자가 묵직해서 기대했는데 지역 특산품으로 볼 수 없는 밀가루 네 포대가 담겨있었다”, “그건 양반이지 나는 종이 타월만 두 봉지 받았다”는 등의 피해 후기가 많이 올라와 있다.
이 외에도, 식품의 품질과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 낯선 이에게 주소와 연락처를 알리는 게 자칫 범죄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 등이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권가영 차이나랩 에디터